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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는 세계 여행

빈을 대표하는 슈테판 성당과 벨베데레 궁전

by chairmans 2022. 12. 13.

1. 슈테판 성당  소개

슈테판 성당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장 큰 성당은 슈테판 성당이고 중요한 행사가 성당 앞에서 열립니다.

성당 주변에는 명소들이 많고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이 성당에서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관광명소는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데 그리스도교 최로의 순교자로 알려진 성인 슈테판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을 시작했고 건축 시작으로 65년이 지난 1212년 완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258년 빈은 대형화재가 발생해 전소되었으나 1263년 보헤미아 왕인 오토 2세가 다시 재건시켰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를 장악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6세는

성당의 기존 양식을 헐어버리고 고딕 양식으로 변경했습니다.

1683년 터키군으로 인해, 1945년 독일군으로 인해 훼손이 되었지만

국민들의 힘으로 복구를 해 옛 모습을 대부분 다시 되찾았습니다.

 

슈베르트나 하이든 같은 거성들이 이곳에서 성가대원으로 활약을 했습니다.

이 성당은 '빈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규모 자체가 크고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혀있어 붙여졌습니다.

대표적으로 모차르트의 결혼식은 1782년에, 장례식은 1791년에 치러졌습니다.

 

슈테판 성당의 길이는 107m, 천장 높이는 39m에 다르는 거대한 성당입니다.

그리고 높이 137m에 달하는 첨탑과 25만 개 이상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하고 웅장한 모자이크 지붕이 인상적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16세기 조각가인 안톤 필그람이 만들었던 설교대와 대리석 석관이 있습니다.

 

 

또 마리아와 예수상이 있습니다.

'치통의 그리스도상' 이 성 외부에 있는데 표정이 치통으로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여 이렇게 불리었다고 합니다.

빈 시민들은 12월 31일이 되면 슈테판 성당 광장에서 새해를 맞이합니다.

 

2. 벨베데레 궁전 소개

벨베데레 궁전

르네상스 이후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져간 합스부르크 왕가가 자리 잡은 곳입니다.

오스트리아는 유럽 중부에 위치해 있는 나라입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영향을 받다가 프랑크 왕국, 동프랑크 왕국을 넘어

962년 신성로마제국으로 자리를 잡으며 세계 강국이 되었습니다.

13세기 이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빈으로 진출을 했고 넓디넓은 영토를 관할하면서 600년을 지켰습니다.

600년 동안 이곳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랜 수도였습니다.

 

유럽의 중세와 근세 시대 때에는 미술작품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권력의 여부를 파악하던 때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럽 최고의 걸작이라고 불리는 미술작품들이 황제의 도시인 빈에 몰렸던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술관 기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빈을 여행하는 것이 중요한 관광 코스가 되었습니다.

벨베데레 궁전(Belvedere)은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오스트리아 제국 군인으로 활약했던 사보이의 왕자 오이겐의 여름궁전이었습니다.

이 궁전은 건축가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가 건축을 하였습니다.

1945년 오스트리아 주권회복 조약의 역사적인 장소가 이 궁전의 2층 대리석 홀에서 성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층에는 '오이겐 왕자의 승전'이라는 프레스코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3층에는 20세기 오스트리아 구상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자랑인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들 또한 이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작품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가 이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3. 빈 tip

-노천카페의 원조 오스트리아 빈-

유럽에는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군중 한가운데에 카페들이 있다.

이러한 노천카페가 처음 등장하게 된 곳이 날씨가 쌀쌀한 지역인 빈이었습니다.

빈을 공격한 터키인들이 두고 간 여러 포대의 커피를 가지고 길 한 군데에 노천카페를 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노천카페가 인기가 많아지며 비엔나를 중심으로 유럽 곳곳에 이러한 가게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노천카페는 여자아이들이 테이블에 아이스크림을 놓고 잡담을 나누던 곳입니다.

그리고 남자들만 출입이 가능했던 카페 안쪽에는 당구를 치며 정치 이야기를 하던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