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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는 세계 여행

학문과 역사가 공존하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by chairmans 2022. 12. 11.

1. 하이델베르크 대학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는 도시의 중심에 대학과 캠퍼스, 도시 건물들이 뒤섞여 있어

어디가 일반 건물이고 대학 건물인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이렇게 오랜 학문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는 생활의 일부분이 대학교와 함께 있습니다.

 

 

독일 남서부에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안에 있는 하이델베르크는 800년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곳을 '대학의 도시'로 기억하고 있는데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들, 사상가와 학자들을 배출했고

독일 정신사에 기여하는 대학이 구시가지 중심에 있습니다.

이 학교는 루프레흐트 1세가 교황이었던 우르바누스 6세의 허가를 받고 설립하게 되었고

독일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대학입니다.

그 후 600년의 긴 세월동안 유럽 학문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유럽의 인문학 분야에 크게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하이델베르크를 찾는 관광객들은 플뢰크 거리를 걷게 되는데 도시 중심부에 대학이 있고 그 교정을 걷는 것만으로

하이델베르크의 관광이 절 반 이상 이루어졌다 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 좋은 자그만한 카페들과 고소한 향기가 가득한 베이커리,

책방들과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집들이 있는 길을 따라 쭉 올라가게 되면 하이델베르크 대학 중앙 도서관과 함께

교내 베드로 교회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의 캠퍼스는 3 곳이 있는데 구시가지에 있는 캠퍼스로는 인문, 사회과학이 관련된 대학과 연구소들이 있습니다.

보통 대학처럼 캠퍼스가 대학 주변에 위치한게 아니라 거리에 있는 보통 건물들 사이에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구시가 중심에서 조금 들어가다 보면 동네 골목 같은 곳에 학생 감옥이 있고

그 모퉁이를 돌아 나오게 되면 분수대가 있는 대학 광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빼먹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은 바로 학생 감옥(Studentenkarzer)입니다.

처음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치외법권 지역이었기에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자유롭게 처벌했습니다.

학생 감옥은 1778~1914년까지 사용이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학생을 하루에서 많게는 한 달 까지도 감금을 했고

중죄를 지은 학생은 3일째까지 빵과 물만 주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러한 처벌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밤에는 그 감옥 안으로 술과 음식 따위들을 반입하며 낭만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감옥 안에는 침대와 책상만 있고 벽에는 그 당시 학생들의 낙서들이 가득합니다.

 

2. 하이델베르크 고성

하이델베르크 고성

하이델베르크 고성은 오랜 기간 방치되어 보존 상태가 우수하지도 않고 그렇게 웅장하지도 않습니다.

30년 전쟁과 팔츠 계승전쟁으로 이 고성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이 성을 복구하려고 했지만

1720년 카를 필립 3세가 선제후궁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764년 번개를 맞아 화재가 발생하면서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고성의 매력으로 평가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 거친 모습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 오히려 미적 가치가 커졌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13세기 처음 축조된 이 고성 안에는 종탑을 비롯해 성문 탑, 화약탑 그리고 감옥 탑 등 여러 개의 탑과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고성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처음 보게 되는건 담장이 무너진 채 홀로 덩그러니 서있는 문입니다.

이 성의 주인이었던 팔츠 공국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가 시집 온 어린 왕비에게 마련한 선물이라고 합니다.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은 루프레히트 관이고

루프레히트 3세가 독일 왕이 된 것을 축하하여 1400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건물 위층 전면에는 왕을 상징했던 독일제국 독수리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고딕식 현관문 정수리 위치에는 장미 화환을 들고 있는 두 천사 부조가 있습니다.

 

1525년 성을 지키는 군인들을 위해 세탁소, 부엌, 빵 굽는 곳 그리고 창고 등이 있는 군인관과

분수 홀 그리고 경제관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1589년부터 1592년 사이에 선제후 요한 카지미르가 술통을 보관할 수 있는 술통관을 짓게 했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술통의 용량은 13만 리터였는데 1751년 22만 리터의 술통으로 교체했습니다.

이 술통이 현재 성 안에 있는 가장 큰 술통인데 폭 7m, 길이 8.5m의 거대한 와인 술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