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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는 세계 여행

유명 문인과 화가들이 모여있던 몽파르나스

by chairmans 2022. 12. 12.

1. 몽파르나스 타워 소개

몽파르나스 타워

파리가 잠시나마 세계 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몽파르나스 타워.

현재는 파리인들이 영화를 관람하러 가거나 유명한 카페들이 있어 휴식을 취하기 위해 모여드는 장소입니다.

피카소를 포함해 수많은 아방가르드 예술가와 시인, 소설가들이 파리의 몽마르트르와 몽파르나스에서

활약 하기 시작한 것은 1912년부터인데 30년 가까이 이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세계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혔습니다.

 

 

조각가 로댕도 이곳에서 세월을 보냈고 부르델과 자디킨 등 아틀리에가 자리 잡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안타깝게 이 지역들은 1970년 개발이 되면서부터 예전의 찬란했던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를 들어서며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몽파르나스 타워가 세워지고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몽파르나스 타워는 59층인데 고층 건물을 지을수 없는 파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높은 건물입니다.

56층에는 파노라마 스카이라운지가 있어 파리인들이나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소입니다.

이 타워는 1973년 완공이 되었는데 그 당시때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몽파르나스 타워를 세우게된 이유가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문화를 유난히 탐했던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의 마천루를 파리에 세울 기회로 삼았고 몽파르나스 타워를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건물을 짓고나니 파리의 경관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였고

그 이후로는 이런 높은 건물을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파리 사람들은 미국의 샐러리맨들을 동경했고 미국인의 생활 패턴이 유행하면서

몽파르나스 타워를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 타워의 59개의 층 중 52개 층이 사무실로 쓰이고 있습니다.

 

2. 몽파르나스 묘지

몽파르나스 묘지

사르트르와 그의 부인 그리고 보부아르가 함께 잠들어 있는 유명한 사람들의 묘비가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

늦가을 낙엽이 바닥을 스치는 몽파르나스 묘지는 음산하면서도 가라앉은 분위기와 인생의 허무함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 묘지는 원래 14, 15세기경에 농장이 있던 자리였는데 3개의 농장을 묶어서 지금의 묘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묘지에는 지금도 농장을 운영했던 당시의 흔적인 물레방아 터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 묘지를 구경할때는 입구에 바로 있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합장 묘를 구경하는 것으로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구경을 하면 됩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돌아야 그나마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의 묘를 먼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명했던 이들의 묘 치고는 의외로 그 모습이 초라합니다.

사르트르 묘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으로 가다보면 천재 시인 보들레르의 묘가 있습니다.

이 묘는 사르트르의 묘 보다 더 초라합니다.

또한 사르트르의 묘는 요지 입구에 있어 찾기가 쉬운 반면

보들레르 묘는 잡초로 무성하고 커다란 숲을 헤치고 가야 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묘에는 평범한 묘지와 같이 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보들레르 묘에는 그를 그리워하고 추모하는 메모지들이 작은 돌멩이로 고정시켜 놓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들레르 묘의 오른편에는 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아름다운 길이 있습니다.

낙엽 떨어지는 가을에는 낙엽이 눈처럼 쏟아져내리면 묘지가 아닌 아름다운 공원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묘지는 특이하게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화려한 묘 틈새틈새로 이름만 덩그러니 있는

철학자 그리고 예술가들의 묘가 쓸쓸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3. 몽파르나스 tip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평생의 반려자 였습니다.

보부아르는 소르본 대학을 졸업했고 철학교수 자격을 얻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2살 위인 사르트르를 만나게 되었고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1929년에 시작되었고 아무런 구속도 없이, 계약도 없이 작가로서 학자로서 그리고 애인으로서

20세기의 역사를 맞이했습니다.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을 받을뻔했지만 그것을 거부했고 1980년 사망하게 되고

그 뒤 6년 후 보부아르도 사망을 하면서 몽파르나스 묘지에 합장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