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눈으로 보는 세계 여행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큰 성채, 프라하 성

by chairmans 2022. 12. 8.

1. 프라하 성 소개

프라하 성

명실상부 프라하를 가장 대표하고 있는 관광지는 1000년이 넘은 고성인 프라하 성입니다.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어 한 해에 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체코는 수많은 전쟁으로 나라를 빼앗겨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 어렵게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독립을 하고 나서도 공산국가 체제의 또다시 지배를 받게 됐었습니다.

이런 아픈 역사 때문인지 체코 사람들은 다른 유럽의 국가보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나 프라하 성에서 마주치는 대통령궁의 근위병들의 굳은 표정을 보고 있으면 체코의 암울했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체코 사람들의 내면에는 굉장히 낭만적인 기질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체코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체코를 상징하는 프라하 성을 찾습니다.

이곳은 프라하의 혼란스러웠던 과거의 역사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체코의 건축물은 세기를 거치면서 3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9세기경 건축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물을 짓게 되고 13세기경에 고딕 양식으로 가미를 더했고

14세기에 카를 4세에 의해 왕궁과 성 십자가 교회 등은 고딕 양식으로 새롭게 건축되면서 성채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르네상스 양식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크 시대 1753~1775년 사이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프라하 성에는 성 비투스 성당과 주교의 저택 그리고 왕궁과 여러 개의 사원들이 있습니다.

그 위에는 현재 200만 권에 달하는 진귀한 고서적들이 소장되어 있는 스트라호프 도서관도 있습니다.

 

프라하 성은 1918년 체코가 공화국이 되고 나서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대통령이 실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집무실과 영빈관이 있습니다.

정원을 비롯해 일부 성내를 들어가는 것은 입장료가 필요하지 않지만 건물 내부와 중요한 소장품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구매해야 하고 입장권은 A~F로 분류가 되는데 관광객들 대부분은 성 비투스 성당, 구 왕궁

그리고 황금소로만 둘러볼 수 있는 B 코스 투어를 가장 많이 선택합니다.

 

 

프라하 위병

대통령 관저 정문 앞에 있는 흐라드차니 광장에서는 매일 정오에 위병 교대식을 정식으로 펼칩니다.

또 한 매시간 위병 교대를 할 때마다 약식으로 교대식을 하고 있어 무조건 정오에 맞추어 갈 필요는 없습니다.

 

정문 위로는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있는 거인들이 발아래에 있는 힘없는 사람을 위협하고 있는 상이 두 개 가 있습니다.

과거 합스부르크 왕가가 체코를 지배하면서 이러한 무시무시한 상징물을 두고 두려움을 주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진품은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고 모조품만 대통령 관저 앞 정문 위에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입구를 지나 정원을 통과하면 성 비투스 성당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10세기에 보헤미아의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바츨라프가 지은 교회인데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시금 재건축한 성당입니다.

성당 안 쪽에는 21개의 예배당이 있고 지하에는 체코의 역대 왕들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성 비투스 성당 안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체코가 그렇게 자랑하고 있는

유리공예 기술이 담겨 있어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성당 중앙에는 장미 창이 빼곡히 놓여있는데 이 유리창을 제작할 당시 무려 2만 7000여 장의 색유리가 사용되었습니다.

 

3. 프라하 tip

-프라하가 전쟁에서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었던 이유-

프라하는 도시의 전체가 '중세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반면 인접 국가인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약 95% 이사이 파괴가 되었습니다.

프라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지 않았던 이유는 체코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유연한 성질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치가 체코를 침공하려고 하자 체코는 전쟁을 포기하고 바로 나치에게 항복을 했고 

그 덕분에 프라하는 전쟁 피해를 입지 않고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